복 음 과   빛      제 4권     94호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시94편> 공동체(개인) 애가시, 악한 자가 언제까지 높임을 받겠나이까?

서론

  이 시는 다윗 후기의 시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이 시에(독창적인 면도 있지만) 옛 다윗이나 아삽의 시의 특징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강림하셔서 원수들을 공의로 심판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 시의 내용을 보면 이 시에 언급된 원수들은 이스라엘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시 94:5,8,10,12). 이 시에 나오는 원수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경멸하였으며, 주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7). 그러나 정상적인 이스라엘 사람은 감히 이러한 일을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적들의 야만적인 행위와 탄압을 인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학자들은 이러한 이 시의 내용을 근거로 해서 이 시를 가장 후기에 쓰여진 시 중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가 후기의 것이라고해서 이 시가 마카비 시대에 쓰여진 시라고 간주할 필요까지는 없다. 왜냐하면 바사(페르시아) 시대에 쓰여진 전도서에도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과 내용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오만한 대적들을 보면서 원수 갚는 일이 여호와께 속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의인을 압제하는 오만한 대적들을 공의로 심판해 주시기를 요청하고 있다. 시인은 대적들의 번영 앞에서도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는 곳에 악인이 설자리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의를 확신하였기에 대적들의 압제와 번영 속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판단을 의지하고,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 우리는때로 악인을 보면서 분노하여 그들을 저주하거나,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고 나설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공정하게 판단할 능력도 없고, 이러한 일을 하다가 우리 자신도 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심판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맡기고 의를 굳게 지키는 것이 옳다.
 

묵상내용


1. 악인에 대한 공정한 심판을 요청함(1-7)
 
1. 여호와여!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여!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취소서!
 2.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서 교만한 자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소서!
 3. 여호와여! 사악한 자가 언제까지,
   사악한 자가 언제까지 높임을 받겠나이까?

  시인은 거만한 악인이 오랫동안 높임을 받는 것을 보아왔다. 그는 이제 이러한 일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보복하시는 하나님"께 진리의 빛을 비추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시인은 하나님을 두 번이나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보수한다"(보복한다)는 말은 히브리어 "네카못"을 번역한 말이다. 이 말은 한 번 보복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힘으로 완전히 복수하고, 또 보응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시인은 복수의 하나님께 "빛을 비추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빛을 비춘다"는 말("호피아")은 악인에 대해 "공의의 빛을 비추어 달라는 것"을 의미한다. 악인들은 죄를 행하면서 어둠 중에 행하면서 아무도 그 일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리의 빛을 비추실 때에, 그들의 은밀한 행위는 더 이상 숨겨지지 못하고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빛을 비추시사 악인들의 악한 생각과 동기와 행위를 모두 드러내시고,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이다.

  또 시인은 하나님을 "세상을 심판하시는 주"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은 이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심판주(왕)가 되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모든 사람들의 행위에 합당하게 심판을 하실 것이다. 때로 이러한 심판이 늦어지는 것 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정확한 시간에 맞추어서 공정하게 심판하신다. 시인은 심판의 주님께 "일어나서 교만한 자에게 합당한 형벌을 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일어난다"는 말("힌나세")은 악인의 행위를 심판하기 위해서 심판 주께서 개입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오랫동안 악인이 번영하며 오만하게 행하는 것을 보아왔다. 이제 그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들에게 합당한 형벌을 내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나님은 때가 이르면 악인의 행위를 공정하게 갚아주실 것이다. 시인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너무 지체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므로 그는 "악한 자가 언제까지 높임을 받겠냐?"고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오랫동안 악인이 높임을 받고 의인이 멸시를 받게되면, 성도들은 탄식 속에 이러한 기도를 하게 된다.
 

 4. 그들이 떠들어대고 거만하게 말하며,
   죄악을 행하는 자들이 모두 스스로 높이나이다.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부서뜨리며(탈취하며, 짓밟으며)  
   주의 기업을 괴롭히나이다.
 6. 그들이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나이다.
 7.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고
   야곱의 하나님이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이다.

  시인은 앞에서 "보복하시는 심판의 주님께 악인들이 언제까지 높임을 받겠느냐?"고 하소연했다. 이제 그는 계속해서 사악한 자들의 오만한 행위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악인들은 "떠들어대며, 거만하게 말하며, 자신을 스스로 높이고 있었다." 개역 성경에 "지꺼린다"고 번역된 말(힙비아)은 "강력한 내적 충동에 의해 계속해서 말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속에 악과 자만심으로 가득차서 그것을 입으로 쏟아내고 있었다. 또 "오만히 말한다"고 번역된 말(아타크)은 "절제하지 않고 무례하고 거만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말을 절제하지 않고 오만한 말을 되는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또 그들은 모두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있었다". 개역 성경에 "자긍한다"고 번역된 말(힛타멜)은 "높이 솟는다"는 뜻으로서, 이는 "스스로 자기를 높이거나 우쭐대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 가책을 느끼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이 지혜로운 영웅이나 된 것처럼 우쭐대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러한 악인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기를 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시인은 여호와께 "악인들이 주의 백성을 탈취하고, 주의 기업을 괴롭히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여호와"는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신실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개역 성경에 "파쇄한다'고 번역된 말(예다케우)은 "부서뜨린다, 탈취한다. 짓밟는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악인들은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주의 백성을 짓밟고 탈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께서 자기 기업으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겁도 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인은 여호와께 그들에 대한 심판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시인은 "악인들이 힘없는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고, 도울 자 없는 고아를 살해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다. 힘있는 사람들은 마땅히 연약하고 도울 자가 없는 사람들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악인들은 연약하고 도와줄 자 없는 과부와 나그네, 그리고 고아를 무자비하게 죽이고 살해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해치는 자는 하나님의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억울한 자들을 살해한 악인들을 심판해 주시기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악인들은 이러한 악을 행하면서 "여호와가 보지 못하고, 야곱의 하나님이 알지 못할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대로 두시면, 그들은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으로 착각할 가능성이 있엇다. 그러면 그들은 더욱 교만해져서,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연약한 자를 죽이고, 온갖 악을 자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러한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을 요청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악을 행할 때에 스스로 심판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단지 그 사실을 하나님께 고하고 공의의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면 된다. 그리고 조급하지말고 하나님의 심판 때까지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2. 악인에 대한 책망과 훈계(8-11)
 
8. 백성 중 너희 우둔한 자들이여! 깨달을지어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이여 너희가 언제나 지혜롭게 될 것인가?
 9. 귀를 심으신 주께서 듣지 않겠느냐?
  또한 눈을 지으신 주께서 보지 않으시겠느냐? 

  이제 시인은 악인들의 무지함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함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악인들은 연약한 자를 살해하고, 성도들을 괴롭히며 악을 자행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알지 못할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속히 실행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공의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자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성을 깨우치고 있다. 시인은 악인들과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우둔한 자들"(보아림), 또는 "어리석은 자들"(케씰림)이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백성"(바암)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연약한 자를 살해하는 악인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악을 자행하면서 곧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면에서 시인은 그들을 "우둔한 자", 또는 "미련한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자들을 향해 "깨달으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너희가 "언제나 지혜롭게 될 것이냐?"고 추궁하고 있다. 시인은 "어찌 귀를 심고 눈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악인들이 만행을 듣고 보지 못하겠느냐?"고 질문하고 있다. "귀와 눈을 만드신 분"이 악인의 행위를 듣고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악행과, 생각까지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물론 하나님은 일시적으로 악인들의 행위를 그대로 두신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행을 몰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을 통해 의인을 연단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심판을 연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그들이 끝까지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리고 지체없이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10. 나라들을 징계하시는 주께서 꾸짖지 않겠으며,
  지식으로 사람을 가르치시는 주께서 꾸짖지 않으시겠느냐?
 11. 여호와께서 사람의 생각을 아시니, 그것이 헛되니라.
 

  시인은 앞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부정하고 악을 행하는 미련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눈과 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말과 행위를 보고 듣지 않겠느냐?" 이제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질문하고 있다. "나라들을 심판하고 징계하시는 주께서 어찌 악을 행하는 자들을 꾸짖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모든 나라들을 세우시고, 무너뜨리며 심판하시는 심판 주가 되신다. 하나님은 부패한 나라를 뽑으시고, 그 나라를 겸손한 사람에게 넘겨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고 그대로 두시지 않는다. 심판 주이신 하나님은 반드시 무고히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자들을 징계하신다. 또 시인은 "지식으로 사람을 가르치시는 분이 어찌 악인들을 꾸짖지 않겠느냐?"고 질문하고 있다. 하나님은 지식이 풍부하시며 지혜로 사람들을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모르는 것이 없으신 전자하신 분이시며,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악인들의 악행을 알지 못할 수는 없다." 인간을 지혜와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악행하며 교만한 자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는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각을 아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는 마음의 생각을 모두 다 아신다. 시인은 이러한 사람의 마음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찾고 그 뜻을 행하는 자가 있는 지 찾아보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다 하나님을 버리고, 탈선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결론적으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선언하셨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은 결국 헛되게 끝을 맺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얻으려고 하는 모든 것들을 그들에게 만족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실망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3. 하나님께서 박해받는 성도를 구원하실 것임(12-15)

 
12. 여호와께서 징계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를 주의 법으로 가르치시고,
 13. 악인을 위해 구덩이를 팔 때까지,
   환난 날에 그들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라.
 14.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며,
   그 기업을 버리지 않으시고,
 15. 심판이 의로 돌아가고,
   마음이 정직한 자들이 모두 이를 좆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인은 앞에서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확실함을 이야기했다. 그는 이제 현재 고통을 받고있는 경건한 자들의 미래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징계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그릇된 길을 가면 엄히 징계하신다. 이러한 주님의 징계는 자기 백성을 바로 잡고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하나님은 아비가 자녀를 징계하는 것처럼 사랑하는 자기 백성을 징계하신다. 이러한 점에서 주의 징계를 받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고통과 연단을 통해서 순수한 신앙을 갖게해 주신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자녀들을 주의 법,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서 그들이 마땅히 갈 길을 가르쳐 주신다. 그러므로 경건한 성도들은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을 연단하기 위해서 잠시 악인에게 고통을 받도록 허락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고통 중에서도 말씀을 통해서 그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는 악인을 심판하기 위해서 그들을 묻을 구덩이를 다 팔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시인은 어떻게 이러한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바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로 시인이 악인의 심판과 의인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엇던 이유는 여호와께서 자기백성을 떠나거나, 자기 기업을 버리는 법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한 번 하신 약속은 반드시 이행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언약을 통해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시인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고 있었기에 악인의 연단과 의인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다. 둘째로 시인이 악인의 심판과 의인의 승리를 확신할 수 잇었던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시 악인이 번영하는 듯이 버이지만, 결국 여호와의 심판을 통해 공의가 시행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시인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인해 결국 악인이 멸망을 당하게 되고, 의인이 다시 세움을 받게 될 것이며, 그들이 주님을 좆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연단하기 위해 주어진 고난은 그 뜻이 이루어진 후에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의인을 박해한 악인들을 결국 자기 행위를 따라 공정하게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마음이 정직한 성도들은 더욱 더 힘을 내어 하나님을 좆으며 섬기게 될 것이다.  

 16. 누가 나를 위해 행악 자를 치기 위해 일어나며,
   누가 나를 위해 악행 자를 치기 위해 설 것인가?
 17.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돕지 않으셨다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중에 거했을 것이라.
 18. 만일 내가 내 발이 미끄러졌다 말했다면,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으리이다.
 19.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로가 내 영혼을 즐겁게 하였나이다.

  시인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들을 연단하신 후에,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고 의인을 구해주실 것이라고 노래했다. 이제 시인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와주신 일을 회상하면서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 시인은 "누가 나를 위해 행악 자를 치기 위해 일어날 것이냐?"고 질문하고 있다. 시인은 악인을 인해 고난을 당할 때에 과연 누가 일어나서 자기를 구해 줄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인의 질문은 두 번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나서 시인은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돕지 않으셨다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거했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이 악인을 이해 곤경에 빠졌을 때에 이러나서 그를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모도, 친구도, 이웃도, 아무도 시인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그를 악인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셨다. 시인은 만일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자신이 이미 무덤과 음부에 들어가서 침묵하고 있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침묵은 죽어서 시체가 되어 조용히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이 실족하여 위험한 곳으로 미끌어졌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했을까? 시인은 자신이 실족하여 위험한 곳에 미끌어 떨어졌다해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를 붙들어 주셨을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시인은 한 때 큰 곤경에 빠져서 많은 걱정 속에 빠져 있었다. 그는 그때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심히 곤란해 했다. 바로 그때에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을 통해서 위로해 주셨다. 그리고 이러한 위로는 그의 영혼에 기쁨을 주었다. 시인은 이러한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용기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20. 법을 핑계 대고 재난을 도모하는 악한 재판장이
   주와 교제(연합)하겠나이까?
 21. 그들은 의인의 영혼을 치기 위해 모이며,
   죄가 없는 자를 정죄하고 피를 흘리려고 하나이다.
 22. 그러나 여호와는 내게 산성이 되시며,
   내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의 바위가 되시도다.
 23. 주께서 그들의 사악함을 그들 위에 돌리시고,
   그들의 악을 인해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께서 그들을 끊으실 것이라.

  시인의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고백하고,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려울 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했다. 이제 시인은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법은 원래 공의를 실천하고 연약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재판관을 세우고 그들이 법을 따라 공의를 시행하도록 부탁하셨다. 그러나 악한 재판관들은 오히려 법을 이용해서 의로운 자들을 괴롭게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러한 악한 재판관들이 공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결코 교제할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사악한 지도자들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는 없다. 그들은 의인의 영혼을 치기 위해서 함께 모여서 음모를 꾸몄으며, 죄 없는 자를 정죄하고, 그들의 피를 흘리려고 일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악한 지도자들의 음모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시인은 하나님은 경건한 자들이피할 산성이 되어주시고, 그들이 피할 큰 바위가 되어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때로 악한 자들의 음모가 일시적으로 성공하고 경건한 자가 해를 당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반드시 악인의 음모가 드러나서 그들이 멸망을 당하게 되어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것은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이 행한 악한 일을 그들에게 다시 되돌려주실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스스로 빠지게 만드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악을 인해  그들을 세상에서 끊으실 것이다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악한 자들을 반드시 세상에서 끊으실 것이다.     
 

     적용과
교훈

1. 하나님은 때로 성도들을 바로 잡고 연단하기 위해서 이방인(악인)의 손을 들어 그들을 치실 때가 있다. 이러한 때에 성도들은 악인에 대한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시인은 이런 고통 중에서 "사악한 자가 언제까지 높임을 받겠느냐?" 고 호소하면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요구했다. 시인은 심판을 요청하면서 악인들의 악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열거하였다.
 1) 그들은 하나님과 그 백성을 모독하고 거만하게 말하며 자신을 높였다.
 2) 그들은 주의 백성을 탈취하고 짓밟았으며 괴롭히고 있었다.
 3) 그들은 연약한 과부와 나그네, 그리고 고아를 살해했다.
 4)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의 악행을 보거나 알지 못한다고 떠들어댔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가증히 여기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 그 심판을 의뢰할 수 있었다.

2. 시인은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이 그들의 행위를 알자 못한다고 떠들어대는 무지한 자들에게 참된 지혜를 전했다. 시인은 귀와 눈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어찌 악인의 행위를 듣고 보지 못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모든 나라들을 심판하실 하나님께서 어찌 악인을 징계하시지 않으며, 사람을 지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어찌 죄인을 꾸짖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생각을 아신다고 선언한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대부분 하나님께서 그 일을 알지못하며, 따라서 그 일에 대한 징계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참으로 무지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3. 시인은 고난이 자기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내린 징계로 인해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백성이 복이 있다고 고백할 수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자기백성에게 주의 법을 가르쳐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묻을 구덩이를 다 팔 때까지 고난 당하는 성도들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시인이 고난 중에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인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될 것을 믿을 수 있었다. 또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믿고 마음이 정직한 자들이 공의를 좆을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4. 시인은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과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시인인 과거에 악한 자들에게 고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 아무도 그를 도와주는 않았다. 바로 그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고난에서 구원해 주셨다. 시인은 그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자신은 이미 무덤 속에 누워서 입을 닫고 있었을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은 시인이 실족하여 부르짖을 때에 자비로 그를 덮어 그가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셨다. 하나님은 시인이 고난 중에서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도 그를 위로하여 그의 영혼을 기쁘게 해 주셨다. 시인은 이러한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고난 중에서 과거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회상하는 것은 고난 당한 자에게 위로와 확신을 얻게 만들어 준다.  

5. 시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회상하면서 악인의 심판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이로 인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법을 이용해서 의인을 괴롭히는 사악한 재판장은 주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들은 의인을 치기 위해 모여서 죄없는 자를 정죄했으며, 그들의 피를 흘리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가증히 여기시기 때문에 반드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신실하신 여호와는 그 백성에게는 환난 날에 산성과 피난처가 되실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그들의 죄악을 인해 그들을 끊으실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시 94편)은 의인이 악인에게 고난받을 때에 다음과 같이 처신하도록 가르쳐 주고 있다.
 1 ) 스스로 악인을 심판하려 하지 말라.
 2) 심판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조급하거나 성급하게 굴지 말라.
 3) 역경을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해하라(연단,징계,회개).  4) 하나님의 공의를 기억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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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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