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 4권     90호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시90편>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

서론

  우리는 그 동안 시편 제3권에 대해서 생각해 왔다. 이제부터 우리는 시편 제4권에 편집된 시들을 생각해 볼 것이다. 시편 제4권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로 시작된다. 이 시는 이스라엘이 옛날 광야를 지나 가나안을 향해 갈 때에 겪었던 고난 속에서 나온 시이다. 모세는 아브라함과 더불어 구약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는 그를 영예의 표시인 "하나님의 사람"(이쉬 하엘로힘)이라는 칭호를 붙여 부르고 있다(신 33:1 참조).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진 선지자를 부르던 명칭이다.

  이 시는 내용에서 뿐 아니라, 언어의 형태에서도 완전히 모세에게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시에는 (신 32장)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와, (신 33장)에 나오는 "모세의 축복", 그리고 신명기에 나오는 대화들과 모세 오경에 나오는 모세의 말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모세는 불신앙으로 인해 광야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인생이 하나님의 진노 속에 덧없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 고백한다. 모세는 이러한 인간의 유한성과 하나님의 영원성을 크게 대조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이 당한 고난과 슬픔을 기쁨으로 갚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여러 주석 가들은 이 시가 모세가 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가 모세의 것이라는 사실을 반대할 뚜렷한 이유는 없다. 만일 이 시가 표제에 기록된 대로 모세에 의해 쓰여진 시라면, 이 시는 시편에 나오는 150편의 시중에서 가장 오래된 시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시의 배경이 된 것은 이스라엘이 가데스바네아에서 불순종했던 사건으로 보인다. 그때에 이스라엘은 가나안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했다. 하나님은 이로 인해 그들에게 진노하셨으며,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을 방황하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상황은 유다가 그 죄로 인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고생하던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는 바벨론 포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편 제4권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묵상내용


1. 영원하신 하나님(1-4)
 1. 주여 주는 대대로 우리에게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또는 주께서 땅과 세계를 만드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주님"(아도나이)이라고 부르고 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시고 그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인(왕)이심을 잘알고 있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손 대대로 우리의 거처가 되어주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손 "대대로"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경건한 성도들이 의지할 안전한 집이 되어주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시대를 살다가 죽어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면 또 다른 세대가 그 뒤를 이어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는 동안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교회)의 가장 안전한 집이 되어 주셨다. 여기에서 "거처"(집)라고 번역된 말(마온)은 "거주지나 정착지"를 의미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 땅을 자기 백성의 정착지로 주셨을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친히 그들의 거처가 되어주셨다. 하나님은 원수의 손에서 자기 백성을 보호해 주시는 피난처이시며, 또한 거처가 되신다. 우리는 잠시 세상에 와서 살다가 돌아가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면서 자기를 찾는 인생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신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인생이 찾을 진정한 안식처는 오직 하나님밖에 없다.

  또한 시인은 "산이 생기기 전, 또 주께서 땅과 세계를 만드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하난미은 산과 땅과 세계를 만드시기 전부터 하나님(엘)으로 계셨다. 그리고 영원 전부터 앞으로도 영원히 주님은 하나님(엘)으로 존재하실 것이다. 여기에서 언급된 "하나님"즉 "엘"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세상을 만들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는 영원 전부터 오직 한 분의 하나님만이 존재해 왓다. 비록 각 민족들이 저마다 신을 섬겨왔지만, 진정한 신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 주님은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도 하나님으로 계셨고, 지금도 하나님으로 계시며, 또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으로 존재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나님은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주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안에 안식처를 찾는 사람은 평안과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피난처는 무엇인가? 물질과 쾌락과 명예인가? 아니면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으로 계시는 하나님인가?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기를 '인자들이여! 돌아가라' 하셨으니,
 4. 주의 눈에 천년은 지나간 어제와 같고,
   밤의 한 경점과 같나이다.

  모세는 앞에서 주님께서 대대로 성도들의 거처가 되시고, 영원전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으로 계실 것이라고 노래했다. 이제 그는 3-4절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성"과 "영원성"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모세는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에서 모세가 사용한 "사람"(에노쉬)이란 단어는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고 선언하셨다. "티끌"로 번역된 말(다카)는 "티끌"이나 "파멸"을 의미하는 말이다. 하나님은 사단의 유혹을 좆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아담에게 사망을 선고하셨다. 이로 인해 "모든 인자(베네 아담)들은 잠시 살다가 티끌로 돌아가야만 하는 덧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모세는 광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하나님은 진노하여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러한 선고는 마치 아담과 하와에게 내려졌던 사망 선고와도 같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로 인해 광야를 방황하다가 덧없이 죽어 모래로 변하는 허무한 존재가 되었다.

  모세는 "주의 눈에 천년이 지나간 어제와 같다"고 고백한다. 인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너무도 허무하고 짧다. 왜냐하면 주의 눈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와 같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천 년은 매우 긴 시간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께는 지나간 어제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모세는 "주님께 천 년이 밤의 한 경점과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밤을 세 부분(경점)으로 나누었다. 시인은 하나님께 천년은 이러한 밤이 경점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밤에 지난 경점은 잠을 자면서 언제 지나가는 지도 모르게 지나가 버린다. 그러므로 밤의 경점은 낮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가 버린다. 하나님께는 천 년도 밤의 한 경점과 같을 뿐이다. 하루살이에게 있어서 하루는 매우 긴 시간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하루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와같이 천년이 인간에게는 길 시간이지만, 하나님께는 매우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천년도 하나님께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몇십년을 살다가 티끌로 돌아가는 인생은 하나님께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님은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또 흐르는 동안에도 영원히 절대적인 힘을 가진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시간의 흐름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절대자이시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원성을 인간의 유한성과 비교함으로 인간의 유한하고 덧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2. 덧없는 유한한 인생(5-12)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 가시니,
   그들이 잠자는 자와 같나이다.
   그들은 아침에 돋는 풀과 같으니,
 6. 이는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 베어져 마르나이다.
 
  시인은 앞에서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에 대해 노래했다. 이제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성에 비해 인간이 얼마나 유한하며 허무한 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1) 시인은 하나님께서 갑자기 내린 비가 홍수가 되어 모든 것을 쓸어가는 것처럼 인생들을 쓸어 가신다고 말한다. 팔레스타인은 우기에 폭우가 내리면 갑자기 작은 강이 형성되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쓸어가곤 했다. 그러면 그 위에 있던 모든 것들은 흔적조차 없이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만다. 이와 같이 인생은 갑자기 찾아오는 인생의 홍수에 휩쓸려서 영원한 잠을 자게 된다. 여기에서 잠자는 것은 의식이 없는 상태, 곧 죽음의 상태를 말한다. 인생은 갑자기 내린 비에 쓸려가 죽음의 잠을 자는는 허무한 존재이다. 2) 시인은 인생이 아침에 돋는 풀과 같다고 말한다. 한 세대가 하나님의 홍수에 휩쓸려서 사라지게 되면, 그 자리에는 다음 세대가 풀처럼 새롭게 돋아나게 된다. 그러나 이들 역시 곧 허무하게 사라지게 된다. 그들은 마치 아침에 새로 피어 잠시 자라다가, 저녁이 되면 베어져 말라버리는 풀처럼 허무하다.

 7. 우리가 주의 노에 소멸되고,
   주의 진노에 두려워 떠나이다.
 8. 주께서 우리 죄를 주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일을 주의 얼굴빛에 두셨나이다.

  시인은 "우리가 주의 진노에 소멸되고, 주의 분노에 두려워 떨고 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을 정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신앙으로 거역했다. 하나님은 이로 인해 그들에게 진노하여 당시 20세 이상 된 모든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이로 인해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을 때까지 약 38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하며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광야 40년 은 주의 진노에 의해 소멸되어 가던 허무한 기간이었다. 그들은 불신앙의 대가로 소망없이 죽을 때까지 광야를 방황해야만 했던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가 주의 노에 소멸되고 주의 진노에 두려워 떨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주께서 "우리 죄를 주 앞에 놓으시고, 우리의 은밀한 일을 주의 얼굴 빛에 두셨다"고 고백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은밀한 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 속으로 은밀하게 지은 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믿지 못하는 것을 아셨다. 그들의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서 숨겨질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앙과 죄를 아셨기에 그 죄에 합당한 형벌을 부과하셨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를 방황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해야만 했다.

 9. 이는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고,
   우리의 해가 숨 한 번 쉬는 같이 끝나기 때문입니다.
 10. 우리 해의 날들이 칠십이요,
   만일 건강하면 팔십을 산다해도,
   그들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이니,
   이는 그 날이 곧 지나가고 우리가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앞에서 하나님의 영원성에 비해 인간이 얼마나 유한하고 허무한 존재인지를 이야기했다. 시인은 이제 왜 그들의 인생이 허무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의 인생이 허무하게 지나간 것은 "그들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진노하시고 그들을 징계하셨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심판 중에 모든 인생을 보내야만 했다. 모세는 "우리의 해가 숨을 한 번 쉰 것처럼 끝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가나안 입성이 취소되고 죽기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광야 40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허무하고 덧없는 기간이었다. 그들의 삶은 뒤돌아보면 마치 숨 한 번 쉰 것처럼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모세는 "우리의 해의 날들이 70년이라"고 말한다. 모세 당시 광야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70년이었다. 그러나 혹시 그들 중에서 간강한사람이 있어서 80년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자랑할 것은 "수고"와 "슬픔"밖에 없었다. "자랑한다"는 말(라흐밤)은 "거만하게 뽐내는 모습", 또는 "앞으로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생들이 자랑하는 외모, 아름다움, 업적 등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70년 또는 80년을 살면서 자랑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수고"와 "슬픔"밖에 없다. 사람들이 자랑하는 인생은 수고와 슬픔 뿐이다. 모세는 젊을 때에 한 나라의 왕자로 자랑스럽게 살아왔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자랑했던 인생이 말년에 돌아볼 때에, 마치 수고와 슬픔으로 가득 찬 것으로 보였다. 그가 그토록 자랑했던 인생의 자랑거리는 날개 달고 날아가는 화살처럼 신속하고 빠르게 지나가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삶은 짧은 시간일지라도 보람되고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인해 징계받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덧없고 허무한 것이다.

 
11. 누가 주의 분노의 힘을 알며,
   주를 두려워 할 분으로 알 수 있나이까?
 12.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 날 세는 법을 가르쳐 주시사,
   우리에게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옵소서!

  시인은 앞에서 7,80년 되는 인생이 진노 중에서 사라져가고, 인생이 자랑할 것은 수고와 슬픔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우리가 이러한 진리를 깨닫게 되면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고, 인생을 책임 있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지혜를 얻는 일은 쉽지 않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짧은 인생을 수고와 슬픔 속에 살면서도 하나님의 진노의 힘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방탕하게 살 때에 그들에게 임할 심판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불순종하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진정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인생을 방탕하게 살다가 엄한 심판을 받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모세는 짧은 인생의 날을 책임 있게 살 수 있도록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 언젠가 우리가 죽을 것이며, 그 후에 그 삶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중에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엄하심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을 방탕하게 살고있다. 인생에게 있어서 인생의 날을 계산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 수 있는 지혜는 정말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모세는 인생을 돌이켜 보다가, 인생을 계산 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기도는 우리에게도 역시 필요하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인생이 빠르게 지나가며 그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할 때에 우리는 성공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세처럼 인생을 세며 올바르게 살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3. 자비와 구원을 구하는 기도(13-17)
 
13. 여호와여 돌이키소서! 언제까지입니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14. 아침에 주의 자비로 우리를 만족케 하소서,
   그리하면 우리가 우리 모든 날에 즐겁고 기뻐하리이다.
 

  시인은 앞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인생의 덧없음을 이야기하고, 인생의 날을 셀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다. 이제 그는 은총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또한 이스라엘을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첫째로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를 돌이켜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께 "언제까지 이러한 징계가 계속되어야 하느냐?" 고 하소연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내려진 징계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를 내리실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겨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해 당하는 고통을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을 "주의 종"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이을 하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모세는 "아침에 주의 자비로 우리를 만족케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고난의 밤을 지나가고 있었다. 모세는 이제 그 동안 계속되어 온 고난의 밤이 지나가고 은총의 새 아침이 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그 동안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해왔다. 이제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고 은총을 베풀어 주시면, 그들의 삶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스라엘은 그 동안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수고와 슬픔 속에서 살아 왔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은혜로 덮어주실 때에 그들의 삶은 다시 기쁨과 즐거운 삶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15. 우리가 고난 당한 날수와 어려움을 당한 해를 따라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16. 주의 종들에게 주의 일을 나타내시고,
   그들의 자손에게 주의 위엄을 드러내소서!
 17. 주 우리 하나님의 기쁨을 우리 위에 임하게 하시고,
   우리 손이 하는 일을 우리 위에 견고케 세우소서,
   우리 손이 하는 일을 견고케 세우소서!

  시인은 앞에서 은총과 구원을 회복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제 시인은 "우리가 고난 당한 날수와 어려움을 당한 해를 따라 우리를 기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한 한 후에,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징계의 시간이 지나가고 새로운 세대가 일어날 때가 되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제 하나님께 진노를 거두시고 다시 기쁘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다시 가나안을 향해 전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죽은 후에 새로운 세대와 함께 하셨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가나안을 향해 전진할 수 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과거에 당했던 모든 치욕과 수치를 씻고,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해주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전에 잃었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녀를 징계하신 후에 싸매어 주시고, 때린 후에 다시 그들을 감싸 안아 주신다.

  또한 모세는 "주의 종들에게 주의 일을 나타내시고, 그 자손에게 주의 위엄을 나타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주의 종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며, "주의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을 말한다. 그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주변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없었고, 이로 인해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이시기를 원하셨다. 모세는 이제 광야에서 교체된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그 자손)들에게 주님의 위엄을 나타내달라고 기도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만천하에 드러내실 때가 되었다.

  또한 모세는 "주 우리 하나님의 기쁨을 우리 위에 임하게 하시고, 우리 손이 하는 일을 견고케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의 동행하심을인해 승승장구하며 가나안을 향해 전진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을 "주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는 주님이며, 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셨다. 모세는 "우리 손으로 하는 일을 견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대적에게 패배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은총을 회복하신 후에는 그들은 다시 승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이 가는 길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은 허무하고 패배적이지만, 하나님과 함께 가는 삶은 보람차고 승리하게 되어있다.
 

     적용과
교훈

1. 한 세대가 가면 또 다른 세대가 계속해서 다가온다. 인간은 이렇게 끊임없이 변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셔서 교회와 성도들이 거할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 하나님께 있어서 천년은 마치 지나간 어제와, 밤의 한 경점과 같을 뿐이다. 하나님은 영원불변하여 성도들에게 변함없는 영원한 거처가 되어주신다.

2. 하나님은 영원하시나 인생은 참으로 유한하고 허무하다. 하나님은 갑자기 비를 내려 모든 것을 쓸어가듯이 인생들을 순식간에 쓸어가 버린다. 그러면 인생은 순식간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죽음의 잠을 자게 된다. 인생은 마치 오늘 피었다가 내일 베어져서 건초가 되어버리는 들풀처럼 허무한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인생의 유한함을 알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책임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인생은 영원한 하나님 앞에서 숨 한 번 쉰 것처럼 짧고 허무하다. 우리는 보통 70년을 살거나 건강해도 80년을 살 뿐이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 지혜와 힘과 재물을 자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훗날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가 자랑했던 모든 것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우리는 이렇게 짧은 기간을 살면서도 항상 하나님을 거역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진노를 경험하곤 한다.

3. 우리는 인생의 유한함과 주님의 심판의 지엄함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책임 있게 살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생의 유한함과 하나님의 심판의 지엄함을 기억하는 자는 인생의 날을 세어가며 책임있게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모세처럼 날마다 "우리 날을 셀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성령께 구할 필요가 있다.

4. 하나님은 자녀들이 죄를 범하면 그들을 징계하신다. 그러면 그들은 잠시 패배하고 허무한 삶을 살게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녀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언제든지 다시 은총으로 덮어주신다. 그러면 성도들은 다시 기쁨과 승리의 삶을 살게된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이웃에게 나타낼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녀들에게 반드시 그가 고통 받은 만큼 위로해 주시고, 다시 그들을 큰 은총으로 덮어주신다. 하나님께 돌아오기 전에 성도들은 하는 일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들이 하는 일마다 형통케 되고 열매를 맺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과 거룩한 군사가 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중개자로 쓰임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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