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음 과   빛      제 4권     102호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목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여호와 앞에 호소하는 기도"(참회시)

서론

  101편에서 시인은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하고 탄식하면서 한숨섞인 고백을 하였다. 이제 이어지는 시 102편의 제목은 이러한 고백과 깊은 관계가 있다. 시 102편의 제목은 이렇게 되어 있다.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하는 기도!" 이 시는 개인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여 하나님께 마음의 근심을 토로하는 기도의 시이다. 시인은 야훼의 종으로 예루살렘과 집을 잃은 이스라엘 백성이 겪고 있는 환난에 함께 참여하고 있었다. "상하다"(아탚)는 말은 "수척해지다, 마르다, 상하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그리고 "근심을 토한다"(사팍 사호)는 말은 "자신의 생각이나 불평, 또는 초조한 마음과 근심을 토로한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러한 시의 제목을 보면 이 시가 고통당하는 성도들이 개인적으로 묵상할 때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곤고한 자"(아니)의 노래는 개인에서 출발하여, 민족과 온 인류로 확장되고 있다. 이 시는 (사 40-66장)의 예언과 유사한 점이 많이 있는데,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이사야의이 예언의 원형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시에는 (시 22:,69:,79:)에 나타난 개념들이 반복해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이 시기 기록된 때는 언제일까? 어떤 사람은 이 시를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피난 갔을 때" 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이 시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쓴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인은 극심한 원수의 비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속히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를 요청하고 있다. 그는 어려움 중에서도 주님께서 자기를 지키시고 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신앙 속에서 위로를 얻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묵상내용


1. 곤경 속에서 부르짖음(1-11)
 
1.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부르짖음이 주께 상달케 하소서!
 2. 나의 고난의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내가 부르는 날에 내게 주의 귀를 기울이시고,
   내게 속히 응답하소서.

  이 시는 기도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으로 시작하고 있다. 시인은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고, 내 부르짖음이 주께 상달케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시인은 고난 중에서 자신이 드리는 기도가 주님께 상달되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나의 고난의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시고, 내가 부르는 날에 내게 주의 귀를 기울이시며, 내게 속히 응답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시인은 오랫 동안 기도했지만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하나님께서 그가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굴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속이 응답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성도들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외면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러한 때에 사람들은 그 환경을 각각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은 어려워보이는 환경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믿음이 적은 사람은 그 환경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서 한 사람이 교통사고나 질병에 걸려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그때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쉬게 하시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감사한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재수가 없어서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원망한다. 역경이 찾아 올 때에 성도들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역경 속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놀다가도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고아들은 저녁이 되면 갈 데가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짓다가도 고통을 당하면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큰 고난과 역경을 당하면 쉽게 낙심하고 좌절하게 되기쉽다.

 3. 이는 내 날이 연기 속에 사라지고,
   내 뼈는 불덩이같이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4. 내 마음이 풀처럼 상하고 말라서 음식을 먹기도 잊었으며,
 5. 내 신음 소리로 인해 내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

  시인은 앞에서 하나님의 응답이 지연되는 것을 보고 자기 기도에 속히 응답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제 시인은 계속해서 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속히 응답해 주셔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다. 첫째로 그는 그 동안의 극한 고난을 인해 그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 그는 "내 날이 연기 속에 사라지고, 내 뼈는 불덩이같이 타 버렸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징계 안에서 덧없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뼈는 몸에서 나는 뜨거운 열로 인해서 불을 얹은 난로처럼 산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우리말 성경에서 "냉과리"라고 번역된 말(모케드)은 "불에 타는 난로"를 의미한다. 둘째로 그는 오래된 고난을 인해 마음은 상하고 낙심에 빠져 있었다. 그의 마음은 긴 고통 속으로 인해 소망을 잃고 말라서, 식욕조차 잃고 말았다. 우리가 낙심하고 심신이 극도로 약해지면 식욕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우리의 몸은 더 약해지기 마련이다. 셋째로 그는 고통 중에서 신음을 하다가 그의 살이 모두 말라 버렸다. 그는 큰 근심과 질병을 인해 밤낮으로 탄식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제는 이로 인해서 살이 뼈에 붙을 정도로 말라 버리고 말았다. 깊은 근심과 갈등에서 나오는 그의 신음은 그의 육체를 가죽만 남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시인은 오랫 동안의 고난을 인해 그의 몸과, 마음, 그리고 그의 영혼은 거의 죽음 사람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신속하게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자기를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6. 나는 광야의 펠리칸(당아새)과 같으며,
   황무지의 부엉이와 같나이다.
 7.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에 홀로 있는 새와 같나이다.
 8. 내 원수들이 온종일 나를 조롱하며,
   미친 자들은 나를 대적하려고 맹세했나이다.

  시인은 앞에서 오랜 고난으로 자신의 심신이 심히 쇠약해져 있기 때문에 신속한 기도 응답을 호소했다. 이제 시인은 하나님께서 속히 응답해 주셔야 할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그는 오랜 동안의 고통을 인해 "극한 고독과 외로움에 빠져 있었다." 그는 광야에 홀로 사는 당아새(펠리칸)와, 황무지에 외로이 사는 부엉이처럼 고독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당아새와 부엉이는 모두 광야나 황폐한 곳에서 고독하게 사는 날짐승이었다. 시인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했으며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추방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는 광야에 홀로 사는 당아새와 부엉이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 내용을 근거로 이 시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요단 강 동편에 피난했을 때"에 지은 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시의 내용은 다윗의 피난 때라기 보다는 유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떠도는 모습에 더 가깝다. 시인은 광야에서 밤을 새우면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이 마치 지붕 위에 홀로 앉아 있는 밤을 지내는 새와 같다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시인은 온종일 원수들의 조롱과 비난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들은 시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비웃고 있었다. 그의 원수들은 그를 조롱하면서 시인을 죽이기 위해서 서로 맹세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시인은 사람들로 인해 배척을 당하여 극한 외로움과 고독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압사롬을 피해 피난한 다윗이나, 바벨론에 포로가 된 유다인들의 상황과 비슷했다. 다윗의 대적들은 압살롬을 왕으로 추대하고 다윗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조롱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윗을 대적하기로 서로 먕세했다. 또한 바벨론 사람들 역시 유대인들을 조롱하고 그들을 대적했다. 시인은 이러한 대적을 가리켜 "미친 자"라고 부르고 있다. 미친 자라는 말(메호랄)은 "미친 듯이 날뛰는 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맹세한 40명의 무리들이 나온다. 그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농성했다. 시인 역시 미친 듯이 날뛰는 대적들의 반대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시인은 대적으로 인해 홀로 외롭게 고립이 되어서 기도를 속히 응답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것이다.

 9. 나는 재를 양식같이 먹으며,
   내 음료에는 눈물이 섞였나이다.
 10. 주의 노와 진노로 인해, 주께서 나를 드셨다가 던지셨나이다.
 11. 나의 날은 기울어지는 그림자와 같으며,
   나는 풀처럼 말랐나이다.

  우리는 앞에서 1) 시인의 심신이 매우 지쳐있으며, 2) 대적들로 인해 심한 고독을 경험하고 있음을 호소하면서 신속한 기도 응답을 요청했다. 이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신속하게 응답해야할 세 번째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속히 응답해야 할 셋째 이유는 시인이 자기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인은 자기의 죄를 회개하려고 재에 앉았으며, 그 곳에서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회개와 슬픔의 표시로 이렇게 재에 앉곤 했다. 시인은 재에 앉아서 몸을 뒤척일 때마다 재를 음식처럼 마셔야 했다. 또한 그는 재에 앉아 밤낮으로 울면서 애통을 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는 눈물을 음료수처럼 마셔야 했다. 이러한 시인의 모습은 압살롬을 피해 피난한 다윗이나,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끌려온 대인들의 상황과 일치한다. 그들은 포로가 된 후에야 자신들이 지은 죄를 뉘우치면서 눈믈로 회개했다. 시인은 이러한 고난이 하나님의 노와 진노 때문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인해 자기르 높이 들었다가 던져 버렸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시인을 한 때 높이 들어 주셨다. 그러나 그의 교만함과 죄로 인해 그를 다시 땅에 던져버리셨다. 이러한 상황 역시 피난을 떠난 다윗이나 고국에서 쫓겨나 바벨론의 포로가 된 유다 백성들의 상황과 일치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시인은 재에 앉아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있었다. 이제 시인의 날은 하나님의 징계 속에서 기울어 가는 그림자와, 뿌리 뽑혀 말라가는 풀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림자는 저녁이 되면 점점 길어지다가 마침내 어둠 속에 사라져 버리게 된다. 그리고 뿌리뽑힌 풀 역시 서서히 마르다가 죽게 되는 것이다. 지금 시인이 당하는 처지가 바로 이러했다. 그러므로 그는 다급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용서와 구원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2. 시인의 신앙(12-22)
 
12.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거하시고,
   주의 기념 명칭은 자손 대대에 미칠 것입니다.
 13. 주께서 일어나시고 시온에 긍휼을 베푸시리니,
   이는 지금은 시온을 긍휼히 여기실 때이며,
   정한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14. 주의 종들이 시온의 돌들을 기뻐하며,
   그 티끌도 사모하나이다.

 시인은 앞에서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자신(또는 유다 백성)이 처한 참담한 상황에 대해서 묘사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역경 중에도 구원을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첫째로 시인이 고난 중에도 구원을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환경에 따라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계심, 또 환경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기념 명칭(여호와)은 계속해서 자손 대대로 전해지게 될 것이다(출 3:15). 시인은 영원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해주실 것을 믿었다. 그는 극한 역경 중에서 세상을 보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역경 중에도 하나님의 구원을 신뢰할 수 있었다.  2) 둘째로 시인이 구원을 확신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때로 자기 백성을 바로잡기 위해서 징계하실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그 후에 그들에게 다시 자비를 베풀어서 그들을 회복시켜 주신다. 시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으면서도 구원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3) 셋째로 시인이 구원을 확신한 이유는 이제 "하나님께서 징계한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유다 백성이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그후에 다시 본국에 돌아올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아마도 시인은 이러한 예언을 알고 있었으며, 또 그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다니엘서를 보면 다니엘도 이러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닫고, 민족의 회복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때에 하나님은 가브리엘을 보내서 다니엘에게 미래의 유대 민족의 역사를 가르쳐 주셨다.
 4) 넷째로 시인이 구원을 확신한 이유는 그들이 예루살렘을 심히 사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살던 유대 백성들은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져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먼 땅 바벨론에서 시온의 돌들을 기뻐하고, 그 땅의 티끌을 사모하고 있었다. 그들은 화려한 바벨론의 건물보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의 돌과 티끌을 더 동경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러한 간절한 소원을 이루러 주실 것이다.

 15. 그러므로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며,
   땅의 왕들이 주의 영광을 두려워하리니,
 16.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실 때에  
   주의 영광 중에 나타나시도다.
 17. 주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고,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셨도다.

  앞에서 시인은 역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는 몇 가지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이제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시온을 다시 건설하실 때에 일어날 일을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해 시온으로 돌아가게 될 때에는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때에 세상의 왕들이 주의 영광을 보고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일로 인해 지금은 열왕들이 하나님과 그 백성을 멸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 백성을 바벨론에서 해방시켜 본국으로 귀환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다시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건설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넘어진 유대 백성들을 다시 일으켜서 그들을 통해 자신의 영광에 세상의 왕들에게 나타내실 것이다. 또한 시인은 여호와께서 시온을 건설하실 때에 "주의 영광 중에 나타나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시온으로 귀환하게 하시고, 성전을 재건하게 하신 후에 그 곳에 거하실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예루살렘은 다시 여호와의 영광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가 될 것이다. 또한 시인은 주께서 "빈궁한 자의 기도를 돌아보시고, 그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으셨다"고 노래하고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빈궁한 자"는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어렵게 사는 유대 백성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지금 바벨론에서 자기 죄를 회개하면서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연약하고 가난한 자가 드리는 기도를 멸시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연약할 때에는 참으로 기도이 응답을 받기 좋은 때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역경 중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

 18. 이 일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록되리니,
   창조함을 받을 사람들이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라.
 19. 이는 주께서 높은 성소에서 하감하시고,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세상을 감찰하시며,
 20.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고,
   사망의 아들을 해방하여,
 21.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선포하고,
   예루살렘에서 주를 찬송케 하려 하심이로다.
 22. 민족들이 함께 모일 때에 나라들이 여호와를 섬길 것이라.

  시인은 앞에서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벗어나서 본국으로 귀환하게 될 때 일어날 일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제 시인은 계속해서 시온이 회복될 때에 있을 일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첫째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유대 백성을 구원하신 일이 다음 세대를 위해 기록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구원을 받은 유대 백성들은 그 사실을 기록해두고, 자손 대대로 후손에게 전하고 가르칠 것이다. 둘째로 시인은 "창조함을 받을 새로운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전의 유대 백성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 멸망하고 열방에 흩어지고 말았다. 하나님은 다시 시온을 회복하신 후에, 그 성에 머물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실 것이다. 이러한 일은 새로운 창조와 같은 놀라운 사건이 될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주님은 수많은 이방인들을 불러서 자기 백성을 삼으셨다. 이로 인해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고 있다. 그러면 시인은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을 확신할 수 있었는가?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하늘의 높은 성소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자기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혀 탄식하는 소리를 들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거의 죽게 된 유대인들의 탄식을 들으시고,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도록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이루실 것인가? 그 이유는 하나니님께서 이 일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을 시온에서 선포하고, 예루살렘에서 주를 찬송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유대 백성들을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통해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선포하고, 그 이름을 찬송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모든 민족들이 함께 모일 때에 모든 나라들이 여호와를 섬기게 될 것이다. 러한 시인의 예고는 복음을 통해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됨으로 성취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시인의 예고대로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었으며, 이로 인해 모든 민족들과 왕들이 여호와를 섬기게 되었다 


3. 시인의 기도(23-28)
 
23. 주께서 내 힘을 중도에 약하게 하시고,
   내 날을 짧게 하셨도다.
 24. 내가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중년에 데려가지 마옵소서!
   주의 해는 대대에 미치나이다.

  시인은 앞에서 하나님께서 포로된 자들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며, 이로 인해 온 세계가 여호와를 섬기게 될 것이라고 노래했다. 이제 시인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자비를 의지하고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한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내 힘을 중도에 약하게 하시고, 내 날을 짧게 하셨다"고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로 인해 그들의 힘을 중간에 역하게 하시고, 그들이 사는 날을 짧게 만드셨다. 시인은 얼마 남지 자기의 삶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 "나를 중년에 데려가지 마옵소서!"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마치 자기 삶이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인생의 절반에서 마감할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와는 달리 "주의 해는 대대로 미치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바라보면서, 자기의 삶을 단축시키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으며,
   하늘은 주의 손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26. 그들(천지)은 멸하나 주는 서시리니,
   그들은 참으로 옷처럼 모두 닳아 헤어지리니,
   주께서 옷처럼 그들을 바꾸시면 바뀔 것이나,
 27. 주와 주의 연대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28. 주의 종의 자손이 거하고,
   그들의 후손이 주 앞에 굳게 설 것입니다." 하였도다.    

  시인은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든 작품이라"고 고백한다. "하늘과 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부여하신 법대로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하늘과 땅은 곧 사라질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은 만물과는 달리 영원토록 서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천지는 옷처럼 닳아서 헤어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옷이 갈아입듯이 낡은 만물들을 새 것으로 바꾸실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고백은 이사야와 계시록의 예언에 자세하게 언급이 되고 있다. 아마도 시인은 바벨론 포로 후에 유대 민족이 복귀한 후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시인이 본문에서 언급한 새 하늘과 새 땅은 주님의 재림 후에 열릴 세상이다. 유한한 인간과는 달리 주님과 주님의 연대는 끝이 없을 것이다. 시인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언약을 따라 "주의 종의 후손들이 약속의 땅에 거하고, 그 후손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굳게 서게 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세상은 낡아지면 옷을 갈아입듯이 새 것으로 바꾸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다. 그리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역시, 그 앞에 서 영원히 굳게 서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예언은 마지막 때에 새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될 성도들을 통해서 성취될 것이다.
 

     적용과
교훈

1. 성도들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때가 있다. 이 때에 성도들은 자신의 받는 고통을 고백하고 용서와 구원을 요청해야 한다. 시인은 이러한 자신의 고통을 숨김 없이 고백하고 있다. 그의 날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덧없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었고, 그의 뼈는 고통과 근심으로 난로처럼 타버렸으며, 그의 마음은 마른 풀처럼 소망을 잃고, 그의 입은 식욕을 잃고말았다. 그는 고통을 인해 온종일 신음했고, 피골이 상접하고 말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여 광야와 황무지에서 슬피 우는 고독한 새처럼 되고 말았다. ㄱ는 이로 인해 잠을 못 이루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 에서 그의 원수들은 하루종일 그를 조롱했으며, 그를 제거하기로 맹세하였다. 그는 재에 앉아 자기 죄를 회개하며, 재를 음식처럼 먹고, 울다가 흐르는 눈물을 음료처럼 마셔야 했다. 주님은 시인의 죄로 인해 진노하여 그를 높이들었다가, 다시 땅에 던져버리셨다.

2. 그러나 성도들은 이러한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영원함과 자비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용서와 구원을 요청할 수 있다. 여호와는 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며 영원히 그 이름이 자손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신실하심을 의지하고 시온을 향해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호소하였다. 그는 지금이 바로 하나님께서 시온을 긍휼히 여기실 때이며, 시온을 구원하기로 정한 때라고 말했다. 시인은 포로가 된 백성들이 바벨론의 화려한 건물보다 시온에 있는 돌과 티끌을 더 사모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자기 백성을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을 확신했다.

3. 시인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시온을 회복시켜 주실 때에 일어날 일들을 예고했다. 하나님의 시온을 회복시켜 주실 때에는 열방이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고, 세상의 왕들도 주의 영광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무너진 시온을 다시 건설하실 때에는, 주님께서 영광 중에 그 모습을 나타나실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포로되어 빈궁해진 성도의 기도를 버리거나 멸시하지 않고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극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신실하심, 그리고 자비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시온의 구원의 날을 바라보았다. 그 때에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비와 구원을 베푸신 일을 기록하여 자손 대대로 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지음받은 하나님이 백성들은 입을 열어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높은 곳에서 고통 받는 자기 백성을 바라보시고, 갇혀서 탄식하는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다. 그리고 죽기로 작정된 그들을 다시 살려주셨다.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여호와의 이름이 시온에서 선포되게 하셨으며,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찬송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모든 민족들이 함께 모여 함께 여호와를 섬기게 될 것이다.

4. 하나님은 자기 종들이 고난 중에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고난과 역경에서 건져주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여 자기 백성과 그 후손들이 영원히 자기를 섬길 수 있게 해주실 것이다. 시인은 하나님의 징계로 인해 심히 쇠약해져서 중년에 죽을 상태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나를 중년에 데려가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인 이스라엘을 영원히 서게 해주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천지는 없어지지만 주님은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다. 천지는 옷같이 낡으면 새 것으로 바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계셔서 영원히 계실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주의 종들과 그 후손들 역시 그 앞에서 영원히 서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때에 세상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되고, 그의 백성은 영원히 하나님과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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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 최영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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