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빛  3권 99호(월-금요일 발행)        Internet Daily Bible Study Institute

 제 목 

 첫 번째 이적(1): 결혼식에 참석하신 예수님 (요 2:1-5)


 묵상내용


  
예수님공생애 첫 주간제 5일에 예수님은 빌립나다나엘을 자신의 제자로 만드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가나로 갔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의 공생에 제 6일에 하신 일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제 6일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갈릴리 가나로 가는 데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갈릴리 가나에 있을 때에 그 곳에서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과 그 일행은 공생애 첫 주간의 제 7일에 그 결혼 잔치에 초대 받고 그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곳에서포도주를 만드신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더 확실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1. 결혼 잔치에 초대받으신 예수님(1-2)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1),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2)..."

  사도 요한은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흘 되던 날은 빌립과 나다나엘이 부름을 받은 날부터 계산한 날입니다. 이 날은 예수님의 공생애 첫 주간의 제 7일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때에 예수님의 모친도 그 잔치에 계셨으며, 예수님그 제자들도 그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이 이 잔치에 먼저 참석한 것을 보면, 결혼식의 주인공이 예수님의 모친과 가까운 관계를 가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마리아의 장남인 예수님께서 그 결혼 잔치에 초대 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매우 금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술과 잔치를 멀리했고, 사람들과 격리된 채 광야에서 자라났습니다. 그가 입은 옷과 그가 먹는 음식은 보통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는 금욕적이고 구별된 사람을 살면서 백성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보통 사람들과 함께 사셨고, 잔치 자리와 향연에도 기꺼이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과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으로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결혼식과 향연에 참석해서 축하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며 거룩하고 신성한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연회에 참석해서 신랑과 신부를 축하해 주신 일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당시의 유대인은 결혼하기 전에 먼저 정혼을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약혼 예식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정혼은 우리의 약혼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혼한 사람을 부부가 된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정혼한 사람이 그 관계를 끊을 때는 이혼 수속을 밟아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혼한 후에 일정 기간 동안(약 1년) 떨어져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지나게 되면 신랑은 결혼식을 열었습니다. 그 때에 신랑은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가서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 싱랑 집에서는 거의 1주일 동안 성대한 결혼 잔치가 열렸습니다. 이 경우에 잔치에 드는 비용은 모두 신랑이 부담했습니다. 신랑은 축하객들이 1주일 동안 먹고 마실 수 있는 음식과 포도주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만일 잔치하는 도중에 포도주나 음식이 떨어지게 되면 신랑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2. 포도주가 떨어짐(3-5)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3),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4).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5)."

  그런데 예수님께서 참석하신 잔치에서 난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창 잔치가 무르익어 가고 있을 때에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마 이 소식을 들은 신랑은 크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이는 당시에는 연회에 쓸 만큼 많은 포도주를 갑자기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신랑은 결혼 초부터 축하객들 앞에서 낭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연회에 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예수님의 모친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모친은 예수님께서 이 곤경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모친은 전에도 예수님께서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해결해 준 것을 체험했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모친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즉시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님에게 그 집의 난처한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친의 말을 듣고 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예수님은 모친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여자"(귀나이)라고 불렀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때에 예수님께서 모친을 경멸하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사용된 "여자"(lady)라는 말은 경멸이나 천대의 의미가 없습니다. 이 말(귀나이)은 당시에 존경의 태도를 갖고 여인을 부를 때에 사용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친을 "여자'라고 부를 때에도 예수님의 모친은 아무 불평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줄곧 모친을 "여자"라고 부르셨습니다(요 19:26). 그러면 왜 예수님은 모친을 "여인"이라고 불렀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일단 메시아로서 공생애를 시작한 때부터 예수님은 가족의 구성원이 아니라, 메시아라는 공적인 지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왕이 공적인 사역을 수행할 때에 가족과 모친들을 공적인 태도로 대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왕의 가족도 공적인 자리에서 왕을 대할 때에는 "폐하", 또는 "전하"라고 부르고, 왕 역시 모친을 대할 때에 "태후"라고 부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도 메시아로서 공적인 신분에 있을 때에는 육신의 모친을 객관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친에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임의로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 고제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때와 시간을 따라 행하셨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모친은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기적을 베풀기를 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모친은 이렇게 함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은 기억을 통해서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릴 때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직 그 때가 되지 않았다"고 대답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임의로 행하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때와 시기를 맞추어서 행동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친은 예수님께서 곤경에 처한 친지를 외면하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정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종들에게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연약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상항 마음으로 자신을 찾아 오는 사람을 영접해 주시고,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마리아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곤경을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살아가다가 어려움을 만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행복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때를 만나면 낙심하거나 좌절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낙심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러한 때에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에 그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 솔직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면, 예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적용과     질문

1. 세례 요한과 주님의 삶은 어떻게 달랐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2. 우리는 우리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당했을 때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모친과 같이 믿음으로 주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는가?

3. 예수님은 왜 모친을 "여자"라고 불렀으며,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가? 내 뜻대로 살고있는가?

  알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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